커피의 역사(16세기 이후 이슬람, 유럽, 아메리카)
이슬람 사회, 한 때 커피를 금지하기도(16세기)
16세기에 들어서는 오스만제국이 아랍지역을 석권하며 커피가 터키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터키의 최초의 카흐베하네(커피하우스)를 열면서 커피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불과 2~3년 사이 콘스탄티노플에 600개 이상의 커피하우가 생겨났고 신분과 직업, 남녀의 구분 없이 출입이 허용되었다는 장점 때문에 융성하였고 '사람들이 놀고 쉬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커피하우스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는데, 과격한 언쟁이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 음유시인, 댄서 등이 고용되며 심지어 매춘, 도박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카페인으로 인한 흥분작용은 이슬람 수도승의 각성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악마의 음료'라는 극단적인 평을 받기도 하였다.
최초의 금지령은 1511년 메카에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메카에는 술탄의 위임을 받은 지역 통치자 카이르 베이는 모든 커피하우스의 폐쇄령을 내려 커피를 마시거나 판매하는 것 모두 금지하고 어기는 경우에는 엄한 벌이 처했다. 또한 커피 박해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인물로서 오스만터키의 재상 쿠프릴리(1586~1661)가 있다. 그는 크레타와의 전쟁 중에 반정부 선동을 두려워 도시의 커피하우스를 폐쇄시켰고 이를 어기는 경우 매질로 다스렸으며 반복해서 커피를 마시다 적발될 경우 가죽 포대에 넣어 보스포루스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가 모든 커피 역사책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역사 기록은 서구 유럽인들의 커피를 향한 동양인들의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인 태도를 부각시키려는 서양인들의 가짜 역사라는 주장을 하는 견해도 있다. 저널리스트 압둘레만 말리크는 예멘이 커피의 정신을 발견한 곳이라면 콘스탄티노플은 커피가 하나의 예술로 재탄생한 곳이며 터키가 커피 탄압의 상징 지역으로 기록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유럽대륙으로의 전파(17세기)
커피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시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11세기말 십자군원정 때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17세기 초반에 들어서며 커피는 본격적으로 유럽대륙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슬람과 무역을 활발하게 하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기원은 현대 커피문화의 시조를 이탈리아에 두게 되는 연유가 된다.
1720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마르코광장에 위치한 카페 플로리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기도 하다. 18,19세기에 들어 이탈리아 많은 도시에 카페가 들어서며 커피는 유럽인들의 생활 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문화권인 유럽에서 이슬람문화인 커피가 처음부터 순탄하게 받아들였을리는 만무하다. 처음 커피는 '이교도의 음료'라는 종교적 이유로 배척되었다. 커피의 각성효과는 종교적 대립상황에서 충분히 악마의 유혹으로 불릴 만도 했다. 악마의 음료로 종교재판에 까지 올라간 커피는 커피애호가였던 바티칸의 교황 클레멘테 8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면을 받고 금지령은커녕 세례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영국 역시 지식인들이 토론을 벌이던 카페가 정치논쟁으로 변질되자 찰스2세 국왕은 1675년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탄압은 많은 지식인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오히려 왕권 약화를 초래해 이 제재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 후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더욱 성행하여 1700년대 초에는 런던에만 2,000개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프러시아(현재의 독일)에서도 이 음료가 전통음료인 맥주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자 커피금지령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밀거래만 성행하고 세금도 받을 수 없게 되자 철회하게 되었다. 이렇듯 많은 유럽인들은 여러 이유로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를 퇴출시키려 노력하였음에도 커피의 매력에 빠진 대중들 사이로 급속히 전파되었고, 커피하우스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싹을 키워나가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식민지 개척과 함께 신대륙으로의 전파(18세기)
대항해 시대 커피가 노예 무역의 상품 중 하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처음부터 커피가 식민지 개척시대를 문을 연 상품은 아니었다. 노예무역이 성황을 이루었을 당시 주 상품은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였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함대에 패한 이후 대륙봉쇄령을 내려 영국을 고립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사탕수수를 공급받을 수 없는 유럽대륙의 국가들이 곤란에 처하게 되었고, 이에 프랑스에서는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사탕수수를 대체할 수 있게 되자 사탕수수는 더 이상 매력적인 무역상품이 아니게 되었다.
사탕수수를 대체할 무역상품의 필요와 커피에 대한 늘어나는 수요와 맞물려 커피가 사탕수수를 대신하여 부를 가져다 주는 상품으로 급부상하였고 유럽 강국들은 앞다투어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를 선두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커피 재배 경쟁이 시작되며 참혹한 노예무역의 역사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1720년에 신대륙으로 전파된 커피나무는 중미를 비롯하여 프랑스나 스페인 식민지역으로 급격히 퍼져나갔고 커피농장의 노예들이 흘린 땀의 무게 만큼 생산성도 높아져 갔다. 미국은 차에 독점권을 가지고 관세를 부과하는 영국에 대한 반발로 독립의 상징인 커피를 선택하며 지금의 커피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마시는 것으로 미국인의 캐주얼한 성향과 잘 맞아 가장 보편적인 커피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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